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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문화
 

어느 고객센터 노동자의 <다음 소희> 영화평


  • 2025-02-25
  • 176 회

[독자 투고] 어느 고객센터 노동자의 <다음 소희> 영화평


나는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고객센터 노동자를 비롯해 몇 명과 함께 <다음 소희>를 봤다.


이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고객센터 저임금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을 다루고 있다.


영화가 고객센터 노동자의 모든 것을 다루진 못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외면받고 있는 고객센터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부분이 고객센터 노동자인 나에게 가슴에 와 닿았다. 


사실 영화에서 특성화고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고객센터라 하면 고객이 몰라서 물어보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곳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객센터도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기업이 어떻게든 이익을 창출하려는 구조이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임금을 최대한 적게 주면서, 강도 높은 업무를 강요한다. 그래서 영화 주인공 소희가 취업했던 곳은, 취업 직전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소희한테 설명해 줬던 것처럼 대기업 본사가 운영하는 좋은 환경의 회사가 아니었다. 실제로는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었을 뿐이다.


이 영화에선 소희가 하청회사에 특성화고 실습생으로 취업한 후, 일반적인 수습사원보다 더 심한 착취와 불이익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회사에선 특성화고 학생이라는 약자의 신분을 악용해 수습 시작부터 강도 높은 업무를 시키고, 실적을 채우고 업무를 성실히 했는데도 온갖 이유로 급여를 정확하게 주지 않고 빼앗았다. 소희가 받은 급여는 고작 110만 원이었다. 결국 이런 악랄한 노동착취가 춤을 잘 추는 등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영화에선 이런 비극의 책임이 단순히 특성화고와 개별 기업에만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그것을 외면하고 있는 사회구조 탓이라는 점을 일정하게 보여준다.


특성화고 당국, 특성화고를 관리하는 지방교육청, 지방교육청 장학사, 경찰서, 노동청 등이 모두 특성화고 노동자를 외면하면서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낱낱이 드러내 줬다. 그래서 이런 직업 환경을 잘 접해보지 못한 분들에게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경쟁과 효율성(이윤)의 논리가 특성화고 노동자의 목을 죄고 있다는 점도 살짝이나마 보여줘서 괜찮았다.


이 영화에서 기업은 진실을 감추려 하고, 소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다른 기관들도 기업에 동조하지만 형사 1인이 소신을 갖고 진실을 파헤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형사가 고군분투하자, 착취했던 기업, 소희를 사지로 내몰았던 자들이 조금이나마 움츠러드는 모습도 보여준다.(물론, 이 영화에선 아주 약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데 소희의 동료, 가족 등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현실에선 이런 형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개인적으론 어느 정도 선한 마음을 가진 형사라도 매우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경찰체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압력을 거스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성화고 실습생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원인을 파헤치며, 재발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것은 현실에선 형사가 아니라 희생자의 가족, 동료, 언론노동자들과 민주노조 및 노동단체들이다. 


이 영화는 문제를 꽤 잘 보여주긴 했지만, 해결책은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이 영화는 볼 만하다. 많은 노동자와 젊은이가 보면 좋겠다. 해결의 씨앗은 문제 속에 있고, 이 영화를 통해 문제를 좀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

2023년 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