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36》(2025)은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이 아니라 그보다 12년 앞선 1936년으로 돌아간다.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을 이해하려면 영국 위임통치 아래에서 벌어진 1936~1939년 팔레스타인 아랍 대봉기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1차 대전 뒤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을 나눠 지배했고, 팔레스타인을 차지한 영국은 밸푸어 선언에 따라 ‘유대인을 위한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하며 유대인의 이주와 정착을 촉진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대지주가 토지를 팔면서 오랫동안 땅을 경작해 온 농민들이 쫓겨나는 일도 벌어졌다. 토지와 생계의 위기, 식민지배에 대한 분노는 결국 봉기로 폭발했다.
영화는 이를 평범한 사람들의 삶으로 보여준다. 자파의 항구노동자 칼리드는 가족을 먹여 살리며 조용히 살고 싶어 하지만, 제대로 된 임금조차 받지 못하면서 저항에 나선다. 농촌 출신 유수프도 예루살렘에서 안정된 삶을 꿈꾸지만, 고향에서 농민들이 땅을 잃고 영국군의 검문과 체포, 폭력을 겪는 모습을 보며 달라진다. 이들은 처음부터 투사였던 것이 아니라 일자리와 가족, 땅을 지키려다 봉기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저항이 총파업과 무장봉기로 확대되자 영국은 군대를 동원해 주민을 체포·구금하고 마을을 봉쇄하며 집단처벌을 가한다. 오드 윙게이트 부대의 폭력은 식민통치가 결국 군사력과 공포를 통해 유지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들도 수동적인 피해자로 머물지 않는다. 상류층 언론인 쿨루드는 처음에는 글과 인맥으로 영국을 설득하려 하지만 점차 거리의 저항으로 이동하고, 농촌의 라밥은 마을과 저항세력을 연결하며 무기 전달에도 관여한다. 반면 일부 부유한 아랍인 지주와 엘리트들은 노동자와 농민들이 싸우는 동안 자신들의 재산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영국과 협상하거나 협조한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36》은 단순한 ‘아랍인 대 유대인’의 충돌을 그리지 않는다. 누가 땅을 소유하고 누가 쫓겨나는가, 누가 일하고 누가 이익을 얻는가, 식민 권력은 이런 갈등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묻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왜 결국 저항에 나섰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그리고 빈곤의 종식과 유대인 노동자와 아랍 노동자 사이의 동등한 처우 등을 요구하며 아랍 노동자들이 파업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문제 해결의 전망이 어디에 있는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81호, 2026년 8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