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화제다. 고액의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게 상금이 456억 원인 게임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진다. 희망 없는 현실이 더 지옥이기에 참가자들은 게임에서 탈락하면 죽는다는 걸 알고도 참가한다.
“애들 놀이를 시켜놓고 사람 죽이는 게 기회입니까?”라고 절규하는 참가자에게, 주최 측은 누구나 게임 규칙만 잘 지키면 상금과 함께 살아나갈 수 있다며 ‘공정’을 말한다. 참가자들이 행동으로 저항하면 총으로 진압한다. 게임의 승패로 생사가 갈리는 ‘거대한 불공정’을 주최 측은 기만적 공정 논리와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관철시킨다.
현실은 어떤가? 전체 일자리에서 10% 정도만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인 구조 속에서 열에 아홉은 죽도록 노력한들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없다. 경쟁하기 전부터 대부분이 탈락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게 정의냐는 질문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논리로 묵살한다.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짓밟는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오징어 게임>과 닮았다.
누굴 위한 공정인가? 지배자들은 착취, 억압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로운 걸 공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들의 ‘공정’은 우리에겐 그저 촘촘하게 짜여진 ‘불공정’일 뿐이다.
※ 지배질서에 맞선 집단적 저항을 볼 수 없다는 점은 이 드라마의 한계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 23호, 2021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