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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문화
 

[영화평] <나의 올드 오크>


  • 2025-03-05
  • 1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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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이 아닌 위를 봐


영국의 어느 폐광촌. 무기력이 가득 찬 이곳에 낯선 이들이 찾아온다.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난 시리아 난민들이다. 이들의 등장으로 마을 사람들은 둘로 쪼개진다. 그들에게 당연히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동네 펍 사장 TJ와 같은 이들도 있지만, 마을의 질서를 깰 것이라며 혐오를 쏟아내는 이들도 있다. 난민 '마라'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카메라를 빼앗으려는 주민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그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마을엔 변화가 시작된다. 흔히 생각하는 지친 난민의 모습이 아닌 주체적 삶을 살며 주변을 바꿔놓는 마라에게, 마을 사람들은 천천히 마음을 연다. 그리고 마을의 과거 역시 드러난다. 탄광의 존속과 광부들의 고용을 두고, 지역에선 1984년에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회사는 노동자를 이간질해 파업을 무력화했고, 끝까지 싸우던 이들은 해고당했다. 복직한 이들마저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해고당했다. 파업 전선에서 강하게 투쟁했지만 결국 사측과 정부에 패배했다는 생각에 무기력증에 빠져 살던 TJ는 마라를 통해 힘을 얻고, 오랜 기간 잠겨있던 펍 한편의 연회장 문을 연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과거 파업의 구호를 다시 말하면서.


그 연회장의 모습은 마을, 그리고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식당엔 난민들뿐 아니라 부모가 밥을 챙겨주지 못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혼자가 된 여러 사람이 한데 모인다. 이들은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가 된다. 각기의 이유로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공동체로 다시 거듭난다.


영화는 시종일관, 우리들이 어디를 보고 누구에 맞서 싸워야 하는지 보여준다. 전쟁의 근간에 있는 책임자들은 누구인지, 탄광 노동자들을 좌절케 한 이들이 누구인지, 지금의 영국 노동자들을 고통받게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나아가 각기 다른 우리 모두의 연대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화는 우리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남성과 여성, 내국인과 외국인이란 여러 단어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이렇게 갈라져선 안 된다. 진정 우리를 이 현실로 몰아넣는 이들이 누구인지 살펴야 한다. 옆이 아닌 위를 날카롭게 쳐다봐야 한다. 


곧 노동절이 다가온다. 노동절 정신에 따라 모두 힘을 모아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쳐보는 건 어떨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노동자가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53호, 2024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