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의 굴레 – 가사노동에 지치고 쉽게 잘리는 여성들
이중의 굴레 – 가사노동에 지치고 쉽게 잘리는 여성들
인천의 두 초등학생 형제가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에 라면을 끓이다가 화재가 발생해 중상을 입고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이들은 코로나19의 재확산 탓에 등교하지 않고 비대면 수업을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 사건은 교육과 돌봄의 책임을 사회가 개별 가정에 떠넘기는 것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방치되는 아이들, 늘어난 가사노동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교까지 비대면 수업이 오래 지속돼 왔다. 그런데 “수업 내내 부실한 유튜브 영상 하나 올려놓는 걸 보면 정말 화가 나더라”고 할 정도로, 비대면 수업은 부실한 경우가 많다. 교사 숫자가 적으니 혼자 온라인 수업을 잘 준비하기도 힘들고, 여러 학생을 상대로 1:1 화상교육이나 전화상담을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은 방치되고 있다. 그럴수록 자녀를 돌봐야 하는 부모, 특히 여성의 부담은 커진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돌봄노동이 2-4시간이나 증가했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세끼 식사를 준비하고, 온라인 수업과 과제를 챙기며, 청소 등 집안일이 늘어난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워킹맘(직장 다니는 엄마)은 직장일하랴 늘어난 집안일하랴 정신이 없다. 사장이나 관리자들이 가로막기에 육아휴직이나 가족돌봄휴가도 맘대로 쓰기 어렵고, 아이를 맡길 데도 마땅치 않아 고통스럽다. 그래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심해지면 가족간 불화와 갈등도 심해지기 쉽다. 비극적으로, 이는 종종 가족 내 더 약한 구성원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잇따른 해고
코로나19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이윤을 지키려고 남성노동자도 대거 해고했지만, 여성노동자를 더 많이, 더 쉽게 해고했다. 통계청의 4-8월 고용동향 발표에 따르면, 최근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61.3%가 여성이었다.
코로나19로 돌봄공백이 발생해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이 커졌고, 여성의 종사 비율이 높은 음식숙박업과 도소매 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 사회복지업 등이 코로나에 더 큰 타격을 받았으며, 그런 일자리가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였기 때문이다.
두 고통, 한 뿌리
여성이 특히 더 겪고 있는 과중한 가사노동과 쉬운 해고는 당연한 게 아니다. 자본가들과 정부는 미래의 노동자인 자녀를 기르고, 과거의 노동자인 노인을 부양하는 책임을 개별 가정에 떠넘긴다. 그 책임은 주로 여성이 맡는다. 자본가는 그걸 구실로 여성을 더 쉽게 해고한다.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마음대로 썼다 버리고, 노동력 재생산 책임을 개별 가정에 떠맡기는 사회구조가 여성이 겪는 두 고통의 근본뿌리다.
당장 여성의 고통을 줄이려면 자녀가 유치원, 초중고,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자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단, 코로나에 걸릴 위험은 없애야 한다. 그러려면 학교 안에서 물리적 거리두기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교실을 늘리고, 교사도 늘려야 한다.
회사 식당이나 학교 식당 같은 대규모 식당에서 간격을 충분히 두고 시간대를 조절해서 식사하면 코로나의 위험도 피하면서 가사노동의 부담도 대폭 줄일 수 있다. 단, 이를 위해선 식당 노동자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이처럼 유치원•초중고•대학 교직원이나 식당노동자 같은 노동자의 숫자를 늘리면 실업과 과중한 가사노동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돈이 없다고? 문재인 정부는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으로 2조 원밖에 지급하지 않았지만, 자본가들을 위해선 594조 원이나 배정했다. 사람이 없다고? 일자리를 애타게 찾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를 보라.
임금삭감 없이 양질의 돌봄노동 일자리를 대거 창출해 교육과 돌봄을 사회가 떠맡는 것이 절실하다.
(2020년 9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