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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거대한 동상이몽


  • 2025-03-06
  • 217 회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타자 윤석열은 “온 국민이 기뻐할 국가적 경사”라고 했다. 수많은 언론, 방송이 이렇게 합창한다. ‘한국’문학의 쾌거다. 기생충(영화), 오징어게임(드라마), BTS(음악)에 이어 ‘K-문화’의 힘을 세계에 과시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에서 ‘한강이 기적’을 일으켰다. 이제 과학기술 영역에서도 노벨상을 타야 한다.


지배자들의 꿈 – 민족주의로 세뇌시키기


이런 민족주의 선동은 ‘한국’이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으로 확연히 나뉘어 있으며, 두 계급의 이해는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점을 철저히 감춘다.


그런데 한강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만 해도,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했던 전두환 정권이 광주 민중을 무참히 학살하고, 민중은 목숨 걸고 싸웠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과거 인터뷰에서 <소년이 온다>에 대해 “제가 작품을 썼다기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과 80년 광주를 체험했던 시민들이 작품을 썼다고 본다”고 했다. 이처럼 <소년이 온다>에는 5.18 광주학살과 항쟁이 반영돼 있기에 박근혜 정부는 한강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탄압했다. 그리고 그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던 자를 윤석열은 문체부 1차관으로 임명했다.


따라서 윤석열을 비롯해 지금 ‘한국’의 위대성을 찬미하는 많은 지배자의 손엔 피가 묻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자본가 계급은 과거에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듯, 앞으로도 노동자를 희생시켜 한국 자본주의를 도약시키려는 꿈을 꾸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세계문학 – 인류 공동의 재산


“개별 민족의 지적 창조물은 (인류) 공동의 재산이 된다. 수많은 민족적‧지역적 문학으로부터 하나의 세계문학이 생겨난다.” 마르크스가 176년 전에 쓴 이 문구는 지금 더욱 빛을 발한다. 한강의 작품은 5.18 광주항쟁, 4.3 제주항쟁 등 한국의 역사적 사건을 다뤘더라도 세계적 보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면서 2차 대전과 스페인 내전, 아메리칸 인디언 학살 등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황석영 등을 통해 한국에 일제 식민통치, 한국전쟁과 분단,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탄압 등 역사적 상처가 있다는 것은 외국 독자도 많이 알게 됐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각국 노동자 계급과 민중이 겪은 아픔은 비슷했기에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적 호응이 차츰차츰 쌓여 왔다.


이런 점을 간과한 채, ‘한국’문학과 ‘K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지배자들은 인류 공동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민족주의 도둑과도 같다.


노동자들의 꿈은?


어느 미국인 문학평론가는 “한국인들은 책은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 타기만을 바란다.”고 비꼬았다.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이 일본(6.1권), 프랑스(5.9권)에 비해 한국은 0.8권으로 크게 뒤처져 있으니 그런 비판이 타당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과로 사회다. 연 1,872시간 노동해 일본(1,611시간), 프랑스(1,500시간)보다 훨씬 많이 일한다.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도 매우 높다.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취업경쟁을, 중고생들은 입시경쟁을 치열하게 벌여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와 그 자녀들에게 책 읽을 여가 시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자본가 계급을 우선 탓해야 한다. 그리고 올해 출판‧도서 관련 예산을 105억 원이나 삭감한 정부도 비판해야 한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한강의 책이 곧 200만부 넘게 팔릴 것이라고 한다. 가진 자들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좋은 책’을 읽고자 하는 열망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 같은 한강의 작품과 함께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이나 고리끼의 <어머니>, 루쉰의 <아큐정전>,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같은 위대한 ‘세계문학’을 두루 읽어보길 바란다.


많은 노동자가 인류 공동의 유산을 받아들이며, 세계 노동자 계급의 위대성을 자각하고 한국의 자본가들과 그 정치인들에 맞설 때, 고통의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4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