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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캄보디아 참극 – 돈에 눈먼 체제가 청년들을 범죄로 내몰다


  • 2025-11-02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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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1)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이 20일 충남 홍성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뉴스1) 

(2) 계속되는 청년고용 부진.(연합뉴스)

 

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5년 10월 22일


“호텔에 갇혀 매일 10시간 사기 작업을 했어요.” 캄보디아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한국 청년 3인이 최근 이렇게 고백했다. 지난 8월엔 20대 대학생이 캄보디아에서 고문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1~8월에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이 납치‧감금당했다는 피해 신고가 330건에 달했고, 18일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된 64명은 수갑을 찬 채 귀국했다.


이들은 '월 400만 원' 같은 미끼에 속아 보이스피싱과 도박 범죄에 동원된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범죄 문제일까?


청년실업: 고장 난 자본주의가 만든 폭탄


한국의 청년 고용률은 45.1%로 17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이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의 가장 긴 내리막길이다.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확산됐으며, 청년들은 '스펙'을 쌓느라 청춘을 갈아넣지만 정작 괜찮은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대기업들은 경력직 중심 채용으로 신입사원 문을 좁혔다. ‘그냥 쉬었음’ 청년이 50만 명이다. 


자영업에 뛰어들어도 금방 폐업해 빚더미에 앉는다. 20대의 은행 대출 연체율은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고, 불법 사금융에 손대는 ‘한계 청년’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범죄 조직들은 ‘빚 탕감’이란 미끼로도 유인하는데 거기에 걸려들어 캄보디아로 간 청년도 많다. 이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체제의 실패다. 이처럼 청년실업, 빚, 절망은 청년들을 캄보디아 범죄 조직으로 내모는 물질적 토대다.


국가와 자본의 공범 관계


캄보디아 사기 산업 규모는 연간 17조 원으로, 캄보디아 GDP의 절반에 달한다. 미국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캄보디아 고위공무원들이 범죄 단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단속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거나 적발돼도 벌금만 내고 다시 운영한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듯, 국가는 자본가들의 도구다. 캄보디아 국가는 중립적 중재자가 아니라 범죄 자본과 결탁한 억압 기구다.


나아가 이 범죄 산업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1990년대에 중국 자본이 캄보디아에 카지노와 리조트를 건설했고, 코로나19로 관광 산업이 몰락한 틈을 타 온라인 사기로 진화했다. 디지털 기술에 능숙한 청년들은 사기 조직이 가장 선호하는 '기술형 인력'이 됐다. 한국은 인터넷 뱅킹이 발달하고, 1인당 소득이 높아 범죄 조직들은 보이스피싱, 온라인 도박 사기를 벌이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한국 청년들을 집중 공략했다.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봉책일 뿐이다. 여행경보를 발령하고 ‘취업사기 주의’ 문자를 보내고 예방 교육을 강화한다지만, 정작 청년들을 절망으로 내모는 구조는 그대로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도 얘기하지만, 고장 난 레코드에서 나오는 기계음 같을 뿐이다. 기업의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정부는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


캄보디아 참극은 경고다


캄보디아 참극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모순이 폭발한 사건이다. 자본가 이윤을 위해 굴러가는 체제에서 청년들은 실업난과 빚의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고, 국가는 자본과 유착할 수밖에 없다.


자본가 이윤이 아니라 모두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사회, 노동자가 생산을 통제하고 사회의 주인이 되는 사회에서만 청년들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럴 때만 일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 그럴 때만 취업자는 과로로 쓰러지고, 실업자는 일자리를 찾다 끝없이 좌절하는 어처구니없는 자본주의 비극을 끝낼 수 있다. 그럴 때만 교육은 무의미한 '스펙 경쟁'이 아니라 자아실현과 사회 발전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캄보디아 참극은 경고다. 돈에 눈먼 체제를 그대로 두면 더 많은 청년이, 더 많은 노동자가 절망으로 내몰린다. 실업과 빚 때문에 고통받는 청년들의 상당수,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청년들은 모두 우리 노동자 계급의 일부다.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면, 일자리, 임금 등 노동자의 당면 권리를 쟁취할 수 있고, 자본가세상을 넘어설 힘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