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홍범도 둘러싼 역사전쟁, 노동자의 눈으로 보자


  • 2025-02-27
  • 189 회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했다. 한덕수 총리는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명칭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시작한 역사전쟁이 홍범도 논란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이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소련공산당 가입


국방부는 철거 이유로 홍범도의 소련공산당 가입을 내세웠다.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난 홍범도는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머슴, 공장 노동자, 포수 등으로 일했다. 20대부터 일제에 맞서 의병 투쟁에 나섰는데 리더십이 뛰어나고 인품이 훌륭했다. 1920년엔 흩어진 독립군들을 모아 봉오동-청산리 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래서 좌우를 떠나 홍범도를 민족독립운동의 대명사로 여기고 기려 왔다.

그런데 봉오동-청산리 전투 등 항일무장투쟁은 좀 더 큰 그림 속에서 봐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1917년 10월, 러시아 노동자 농민 병사들은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노동자혁명을 성공시켰다. 소비에트 권력은 러시아 피억압민족들에 즉시 민족자결권을 줬다. 이는 조선을 비롯한 수많은 식민지에서 ‘민족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주의의 확산을 우려해 미국의 윌슨 대통령도 민족자결을 주장했지만 이는 1차 대전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적용됐기에, 일본 식민지인 조선은 배제됐다.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조선에서 200만 명이 3.1만세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고, 이런 대중운동에 고무받아 봉오동-청산리 전투 같은 무장투쟁도 성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노동착취와 모든 억압, 침략전쟁을 없애기 위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식민지 조선의 민족해방 투쟁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홍범도 같은 뛰어난 독립투사들이 사회주의자가 되고, 1920년대부터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에 사회주의자들이 우뚝 섰던 것은 필연이었다. 이런 점에서 홍범도 장군이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것은 지워버려야 할 역사의 오점이 아니라 모두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명예다.


자유시 참변


국방부가 내세운 두 번째 철거 이유는 자유시 참변이다. 러시아 자유시에서 적어도 수십 명의 독립군이 죽고 수백 명이 체포당하는 참변이 발생했는데, 이는 한인 사회주의자들의 분열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다. 홍범도는 당시에 현장에 없었으며 두 파의 분열주의를 비판했고, 체포당한 독립군을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려고 자유시 참변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가짜 사회주의


1923년 10월 독일혁명이 실패하고, 1924년 1월 레닌이 사망한 다음 스탈린은 관료들의 화신이 돼 세계혁명을 포기했고 1917년 10월 혁명의 위대한 성과도 체계적으로 파괴해 갔다. 스탈린이 1930년대에 한인들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을 때 홍범도도 같이 쫓겨나 고생하다 죽었다.

윤석열 정부나 극우는 레닌 시절의 진짜 노동자권력과 스탈린 정권을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악마처럼 묘사한다. 그래야 자본가 착취자들의 정치적 하수인인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역사적 뿌리인 친일·친미 세력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홍범도 지키기


민주당이 홍범도 지키기에 열성이다. 문제는 목적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야말로 ‘항일 전통’을 이어받은 주류라고 내세워 내년 총선 등에서 권력을 다시 잡으려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홍범도로부터 ‘항일 전통’만 계승하려 하지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에 대한 열망’은 계승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처럼 집권하면 자본가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며 노동자 권리를 억압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역사 왜곡에 맞서되 민주당도 믿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역사의 진실을 배우고 알릴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이익에 맞게 오늘의 역사를 바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3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