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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저출생 – 결혼‧주택‧희망 모두 포기해야 하는 사회의 거울


  • 2025-03-05
  • 176 회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저출생 공약을 앞다퉈 내놨다. 아빠의 출산휴가를 한 달로 늘리고, 육아휴직 급여를 높이며, 둘째 낳으면 24평, 셋째 낳으면 33평 임대주택을 주고…. 2006년 이후 380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이런 생색내기 총선 공약으로 출산율이 크게 올라갈까?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구조


저출생의 대표적 원인으론 일자리, 여성차별, 주거, 육아‧교육 등의 사회구조 문제가 있다.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일자리는 10%밖에 안 된다. 따라서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해도, 열에 아홉은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서 더 벗어나기 어렵다. 하루하루 살기도 팍팍하고, 연애할 시간도 돈도 없는데 어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여성은 2023년 기준으로 남성 임금의 70%밖에 못 받고 있다. 여성 고용률은 52.9%로, 남성 71.5%에 비해 거의 20%나 낮다.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45.5%로 남성 29.8%보다 훨씬 높다. 아이를 낳으면 경력이 ‘단절’되고 인생이 ‘절단’날 수도 있는데, 왜 주저하지 않겠는가?

주거 문제도 심각하다. 월세는 계속 오르고, 전세는 사기당할까 걱정스럽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에 몰려들지만, 주거는 불안정하고 내 집 마련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아이를 낳아도, 맘 편히 기를 수 없다. 육아휴직을 하면, 불법인데도 승진을 늦게 시키는 기업이 무려 절반에 육박했다. 믿고 맡길 곳도 마땅치 않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동 중 국공립어린이집을 다니는 아동은 30%도 안 된다.

초기 양육만 문제인 건 아니다. 부모가 자녀 1명을 낳고 26세까지 양육하는 데 6억 1,583만 원이 들 거라고 한다. 공교육이 부실해 사교육에 의존하느라 부모의 허리가 휘는 경우도 많다.


실질적 대책을 세울 의지도 능력도 없는 지배자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지배계급 정당이 저출생 공약을 내세우는 건 수많은 젊은 여성, 남성 노동자가 자녀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길게 보면 그들은 한국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대리인으로서 자본가들이 미래에 쥐어짤 예비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싶어 한다. 또한 남북한 무력충돌이나 미중 전면전을 비롯한 3차 대전이 벌어질 때 등을 대비해 미래의 군 병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들은 출생률을 실제로 높일 수 있는 대책엔 관심이 없다. 청년실업이나 일자리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공기업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늘리고,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 하는가? 윤석열 정부가 지금 외주화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에서,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온전한 정규직화 제로’로 끝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들에겐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다. 

지배계급 정당들이 남녀 임금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진실로 노력할 수 있겠는가? 공공임대주택을 대거 공급할 수 있겠는가? 국공립어린이집을 대폭 확대할 수 있겠는가? 교육재정을 크게 확충해 교사 수를 늘리고,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 공교육을 제대로 살릴 수 있겠는가? 이를 위해선 자본가들의 이윤을 많이 빼앗아 와야 하는데, 자본가계급 정당들이 과연 그럴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이런 걸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들은 겨우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의 면피용 대책만 내놓을 수 있을 뿐이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포기하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 연애‧결혼, 주택, 꿈, 심지어는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포기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총체적 모순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이 모순이 매우 심각하기에 한국의 출생률이 매우 낮은 것이다. 따라서 진짜 문제는 저출생 자체가 아니라 모든 젊은이와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자본가세상에 있다. 그리고 진짜 대책은 착취와 억압이 없으며 양육은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세상을 노동자들이 건설하는 것에 있다.


 

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1면 사설, 2024년 1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