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돼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릴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이 “재난 상황”이라고 9개월 동안 아우성을 쳤다.
그런데도 정부는 ‘선순위 저당권자의 권리’[즉, 가진 자들의 권리] 운운하며 경매 유예 조치에도 회의적이었다.
부랴부랴 내놓은 부실한 정부 대책
그런데 인천에서 20-30대 피해자 3인이 소중한 목숨을 잇따라 끊었다. 그래서 비판 여론이 일자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일시적으로 경매를 유예하고, 경매 때는 피해자에게 ‘우선 매수권’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우선매수권으로 집을 사더라도 전세금을 상당히 날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세 대출이 있는데 또 주택 구매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 집을 낙찰받을 경우에도 청약 기회가 사라져 더 좋은 곳에 자기 집을 마련할 기회도 잃는다.
이런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정부는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LH공사가 집을 사서 임대하는 방안도 최근 제시했다. 그런데 이는 주거안정엔 약간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전세금은 다 돌려받지 못한다.
그리고 불똥이 다른 쪽으로 튀는 문제도 있다. 정부가 공공 매입임대 예산을 지난해에 견줘 3조원 넘게 삭감했는데, 전세사기가 심각하다고 이를 늘릴 계획은 없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려면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다자녀 신혼부부, 고령자, 저소득 청년 기숙사, 반지하 거주자 등에 대한 지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피해자의 전세금을 혈세로 지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분양원가가 평당 1,100만원밖에 안 될 미분양 주택을 LH가 평당 3,300~4,620만원에 사들여 혈세로 건설 자본의 배를 불렸다. 재벌의 배를 불릴 돈은 많은데, 투기자본의 피해 서민을 벼랑 끝에서 구할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민주당, 정의당, 진보당은 피해자에게 전세금을 보상해주자고 하고 있지만 ‘전액 보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전세 사기는 어떻게 벌어졌는가?
자기 자본금이 한 푼도 없는 빌라왕 김씨는 3년 만에 빌라를 1139채나 사들였다. 방법은 ‘갭투자’와 ‘무갭투자’였다. ‘갭투자’는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만큼만 내고, ‘무갭투자’는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거나 비슷할 때 자기 돈을 한 푼도 안 들이고 집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거나 비슷한데 왜 그런 빌라에 사람들이 전세로 들어갔을까? 이 부분에서 전세사기꾼들이 활약했다. 부동산컨설팅업체(분양대행업체, 브로커), 건축주 등으로 이뤄진 사기꾼들은 신축빌라의 경우 시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약점을 노렸다. 감정평가사들도 회유해 빌라의 시세를 실제보다 높게 감정하게 해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전세보증보험이 있으니 안심하라고 피해자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가령, 브로커들이 빌라 전세를 원하는 고객들을 모집해오면, 건축주는 2억 2천만 원의 전세금을 받고 계약한 다음, 곧바로 이 집을 빌라왕 같은 명의대여자(가짜 집주인)에게 2억 원에 팔아넘겼다. 2천만 원 중 200-300만 원을 빌라왕에게 주고, 나머지를 브로커들이 챙겼다. 2월에 구속된 부동산컨설팅업체 대표 신씨는 ‘바지 빌라왕’을 7명이나 거느렸다.
전세사기를 완전히 뿌리뽑으려면
전세사기를 단지 몇몇 사기꾼의 탐욕 탓으로 돌릴 순 없다. 주택을 ‘사는(live) 곳’이 아니라 ‘사는(buy) 것’으로 만들어버린 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원인이 있다. 법망만 교묘히 피해가면, 부동산 투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노동자 서민이 고통받고 목숨까지 잃을지라도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이, 아니 돈을 많이 벌면 칭송받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그리고 2019년에 강서구 화곡동에서 원조 전세사기가 터졌지만, 검경이 3년 동안 방치해 전세사기가 전국으로 더 크게 확산됐다. 전세사기를 뿌리 뽑고 누구나 집 걱정 없이 살려면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부와 사회를 모두 바꿔야 한다.
(철도 행신 KTX 정비기지 현장신문 1면 사설, 2023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