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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건강보험 고객센터 파업 - 노동자에겐 무엇이 공정한가?


  • 2025-02-23
  • 181 회
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원 1000여 명이 처우개선, 직영화를 요구하며 7월 1일부터 무기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에 맞서 사측은 공단 사옥 둘레에 철조망, 철제 자바라, 차벽까지 설치했다. 건강보험공단의 일부 정규직은 “직고용이 공정한가?”라며 파업노동자들을 비난했다.
상담원들은 왜 파업할 수밖에 없었는가? 노동자에게 공정이란 무엇인가?

2초 안에 받고 3분 안에 마치고

상담원들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사원번호를 받고, 보험료 부과‧징수, 의료 급여, 건강검진 등 총 1060가지의 공단 업무를 상담한다. 이렇게 핵심 업무를 많이 하기에 상담원들이 없으면 공단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그래서 공단 이사장도 이들이 ‘건강보험의 귀이자 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푸대접받고 있다. 2006년 외주화 전까지 정규직이 했던 필수 업무를 맡고 있지만, 이들은 건강보험공단이 아니라 11개 업체에 소속돼 있다.
공단과 업체 사측은 업체별, 팀별, 개인별로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든다. 그래서 전화가 울리면 2초 안에 받고, 3분 안에 상담을 마쳐야 한다. 하루에 평균 120콜을, 많게는 170-180콜까지 받아야 한다.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 채 ‘전화 받는 기계’가 된다.
그러고도 겨우 최저임금 수준만 받는다. 건강보험공단이 민간업체에 위탁하는 비용이 1인당 307만 원 정도이므로, 제반 비용을 제외하고도 민간업체의 중간착취가 상당하다.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같은 다른 사회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건강보험공단의 기간제 노동자와 청소‧경비 업무를 하는 파견‧용역노동자 700명가량도 이미 직고용됐다. 그래서 건보 고객센터 파업노동자들은 “왜 우리만 안 된다는 거냐”며 분노하고 있다.

책임 회피하는 정부와 공단 사측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하자마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떠들썩하게 선언했다. 하지만 온전하게 정규직화한 경우는 거의 없다. 정부는 자회사 전환도 정규직화라고 하지만, 코레일 자회사만 보더라도 자회사는 임금도 복지도 그대로인 ‘덩치만 큰 용역회사’일 뿐이다.
건강보험공단 사측이 자회사 전환을 제시했만, 파업노동자들은 자회사의 문제점을 잘 알기에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파업노동자들이 공단 정규직과 똑같은 임금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별도 직군을 만들어 도급비를 온전히 상담사를 위해 써달라’고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공단 사측 모두 노동자의 요구를 한사코 외면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열하고 갈등하게 만들고 있다.

자본가의 공정 VS 노동자의 공정

모든 노동자가 안정된 일자리와 넉넉한 임금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의 지배자들은 이걸 보장할 수 없다. 이윤극대화를 위해 민간위탁·외주화 등을 늘려왔기에 전체 일자리에서 겨우 10% 정도만이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일자리다. 죽도록 경쟁시키고 열에 아홉을 탈락시켜 고용불안, 고강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서로 분열하게 만든다.
사회불평등이 극심해 취업경쟁도 애당초 매우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데, 경쟁에서 탈락하면 개인 탓으로 돌린다. 불평등, 비정규직 제도, 노동착취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는 제쳐 두고 오직 ‘노오력’하라고만 한다. 이게 과연 공정한가? 자본가들과 정부는 ‘공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겐 전혀 공정하지 않다. 모든 노동자에게 안정된 일자리, 넉넉한 임금을 보장하는 게 노동자에겐 공정하다. 불평등, 비정규직 제도, 노동착취를 없애는 것이 노동자에겐 공정하다.


격주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2021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