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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프랑스 시위 - 자본가 언론의 눈이 아니라 노동자의 눈으로


  • 2026-11-07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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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시위자가 “연금과 임금을 물가에 연동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출처_LO 홈페이지)

 

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6년 11월 4일


10월에 매주 수십 만이 참여했던 프랑스 시위는 이제 11월 5일 하루 파업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이 시위는 다른 나라들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자본가 언론은 왜곡 보도하기 바쁘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퍼주기 중독” 운운했고, 〈중앙일보〉는 “10년 뒤 한국의 미래다…불타는 프랑스가 보낸 경고장”이라고 1면에 대문짝만하게 썼다. 자본가 언론은 프랑스 시위를 자본가의 눈으로만 본다.
 
하나, ‘폭력’만 보여 주는 보도
 
우리는 이런 보도 행태를 잘 안다. 철도가 파업하면 자본가 언론은 파업의 이유를 한 줄도 안 쓰고, “시민의 발이 묶였다”는 말만 반복한다. 인력이 얼마나 모자라는지, 안전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외면한다. 불편만 크게 보여 주면 시민은 파업 노동자를 원망하게 된다. 프랑스 시위 보도도 같은 수법이다.
 
그리고 폭력을 누가 먼저, 얼마나 많이 휘둘렀는지를 자본가 언론은 다루지 않는다. 시위 첫 3주 동안 프랑스 경찰은 학생을 포함한 청소년을 1만 명 가까이 구금했다. 경찰은 진압용 수류탄과 최루탄, 섬광탄도 마구 쐈다. 14세 학생은 최루탄에 얼굴을 맞아 턱뼈와 이가 부러졌다. 15세 학생은 손을 잃었고, 최소 두 명이 실명했다는 보도가 있다. 17세 학생의 머리를 강물에 처박고 14세 소녀의 목을 조르는 경찰의 영상이 퍼졌다.
 
물론 상점을 털고 건물을 부수는 행동은 자본가계급과 그 정부를 조금도 약화시키지 못한다. 자본의 지배를 흔드는 힘은 거리의 소수가 상점에 던지는 돌이 아니라, 생산을 멈출 수 있는 노동자의 단결에서 나온다. 그러나 폭력의 책임은 먼저 지배자들에게 있다. 교실에 쥐가 돌아다니고 한 반에 35명씩 밀어 넣는 학교가 학생들에겐 이미 폭력이다. 저임금과 물가 폭등으로 노동자의 지갑을 털어 주주의 금고를 채우는 것은 거대한 ‘약탈’이다.
 
둘, ‘퍼주기 복지’ 때문이라는 거짓말
 
자본가 언론은 프랑스가 복지를 ‘퍼줘서’ 재정이 거덜 났고, 연금을 제때 깎지 못해 위기가 터졌다고 말한다. 재정은 한정돼 있으니 노인 연금이냐 청년 교육이냐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다. 노인과 청년을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이간질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최근 〈르몽드〉 글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1970년 이후 공공부채는 GDP의 20%에서 120%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민간 자산은 GDP의 300%에서 600%로 불었고 그 상당 부분이 극소수 금융 자산가에게 몰렸다. “프랑스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 문제는 부의 부족이 아니라 부의 분배”다.
 
그 돈은 어디로 갔는가. 마크롱은 집권 후 법인세를 33%에서 25%로 내리고 부유세를 폐지했다. 같은 기간 500대 부호의 자산은 GDP의 약 25%(2017년)에서 한때 약 45%(2023년)까지 늘었다. 2023년 한 해에만 17% 늘었다. 전체 기업은 연간 2,110억 유로(약 319조 원)라는 막대한 공공 보조금을 받는다. 그런데 물가인상을 고려할 때 2021~24년 사이에 실질임금은 약 2%나 줄었다. 그리고 2017년 이후 학생 1인당 고등교육 예산은 20% 줄었는데, 군사비는 1년 만에 70억 유로[약 10조 5천억 원] 가까이 늘었다. 프랑스 정부가 ‘퍼준’ 것이 있다면 그 대상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였다.
 
셋, ‘10년 뒤 한국의 미래’라는 협박
 
자본가 언론이 폭력을 부풀리고 원인을 뒤집는 이유는 결국 한국 노동자를 겨냥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을 요구하지 말라는 협박이다. 한국의 복지 현실은 프랑스에 훨씬 못 미친다. 연금의 실질(세후) 소득대체율은 39%로 OECD 회원 중 바닥권이며, 프랑스(70%)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
 
이재명도 표현만 다를 뿐 노리는 건 같다. 그는 유럽 혼란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원인은 저성장”이라며, 유럽을 “반면교사” 삼아 “성장의 물결”을 만들자고 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안에서 ‘성장’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자본가 이윤을 위해 노동자가 희생하라는 뜻이다. 주 52시간 등 규제를 죄다 풀고 기업에 특혜를 몰아주는 초광역특구법이 그 사례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가 경제의 성장(이윤증식)이 아니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는 프랑스든 한국이든 긴축으로 그 비용을 노동자에게 떠넘긴다. 이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 궁극적으론 착취 질서 자체를 끝내는 것이 대안이다. 자본가를 위해 희생할 때가 아니라, 프랑스 학생 및 노동자처럼 이곳 자본과 정권에 맞설 때 우리의 미래를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