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프랑스 혁명적노동자조직 LO의 기사를 미국 스파크 그룹이 영어로 옮겼는데, 이를 다시 우리가 한글로 옮긴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과 이스라엘 군대의 가자지구 학살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이스라엘의 정책이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정확하게 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언론이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고 있다.
반유대주의(유대인 혐오)는 서구 기독교 세계에서 시작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까지 이어진 최악의 역병이므로, 이런 비난은 상처가 된다. 1894년에 드레퓌스 대위를 반역죄로 고발하거나 2차 대전 당시 나치 정권과 협력하는 등 어떨 때는 공공연하게, 그리고 그 이후로는 덜 공개적으로, 한 세기가 넘도록 반유대주의는 프랑스의 극우 진영에 자리를 잡았다. 로마노프 차르의 제정 러시아는 반유대주의를 정부 정책으로 삼았다. 그들은 대중반란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포그롬[특정한 민족집단, 특히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을 이르는 러시아어. 20세기 초 혁명운동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옮긴이)]을 일으켰다. 결국, 정신착란에 가까워진 반유대주의는 독일에서 나치가 권력을 잡도록 해줬고, 이는 600만 유대인 학살로 이어졌다. 노동자 운동은, 당연하게도 항상 반유대주의에 맞서 왔다. 그리고 반동세력은 항상 유대인과 혁명가를 뭉뚱그려 증오하고 탄압해 왔다.
오늘날, 기성 질서를 수호하는 자들은 진실을 뒤집고 있다. 프랑스, 미국, 그리고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반유대주의를 맹세했던 세대의 계승자들은 이제 이스라엘을 무조건 방어하는 것과 반유대주의에 맞서 유대인 일반을 방어하는 것이 같다고 지금 이야기한다. 이것은 파렴치하고 자기만족적인 거짓말이다.
사실, 1948년 이전의 시온주의 운동도, 그 이후의 이스라엘 정부도 모든 유대인(즉 반유대주의의 잠재적 타겟이 되는 모든 유대인)을 통합시키지도 않았고 대표하지도 않았다. 분명히, 이스라엘과 모든 국가에서, 시오니즘과 정착촌, 가자 폭격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그들은 네타냐후와 그의 정책이 자신들을 규정하고 대표하는 것을 거부한다.
문명의 진보가 점점 더 침식되는 가운데, 재앙이 멀지 않았다. 우리는 유대인 박해로 다시 빠져드는 것을 분명히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유대 국가의 존재가 박해받고 위협받는 유대인에 대한 궁극적인 보호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이스라엘의 정책, 그리고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제국주의의 전진 기지가 됐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주민들을 벽 너머의 지옥을 무시하는 거짓된 삶으로 내몬다. 이 정책은 그들[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을 항상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교도관과 군인으로 만든다. 이것은 전 이스라엘 국민의 증오를 조장한다.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가 다른 나라에 사는 유대인들, 즉 전 세계 대다수 유대인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중동의 군인이 되기 위해 이민을 가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존재가 미 제국주의의 군사적 지원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이스라엘의 존재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안은 오직 그 지역의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뿐이다.
서로 민족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사람들이 공존하게 하기 위해 노동자 혁명의 이름으로 이스라엘과 제국주의의 정책을 비판하고 싸우는 것은 반유대주의와 관련이 없다. 반대로, 이것은 썩어가는 제국주의가 끊임없이 부활시키는 반유대주의라는 중세시대의 재앙을 최종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출처: 미국 혁명적노동자조직 스파크의 신문, 2023년 10월 30일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