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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국제
 

[프랑스] 희망은 체념이나 파괴적 폭력에 있지 않다


  • 2025-02-27
  • 3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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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나엘을 위한 흰 옷 행진(출처 – LO 홈페이지)


우리는 낭테르에서 17세 나엘이 죽은 것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운전자의 가슴에 총을 쏘는 것 말고 차를 멈출 다른 방법이 없었는가? “쏴 버려”라는 경찰관의 위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장면이 촬영되지 않았다면 사살은 정당방위로 위장됐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확실히 그렇다.


이번에는 경찰이 종종 경범죄에 대해서도 총을 쏘고, 사실상 사형을 집행한다는 증거가 영상에 담겼다. 그리고 특정 경찰 노조의 반응만 들어도, 그들은 빈민가에 사는 젊은이의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곳에 사는 젊은이들은 매일 인종 프로파일링, 인종 차별적 발언, 고용 및 주택 차별에 노출돼 왔다.


부르주아 젊은이들이 인맥과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을 때, 이들은 돈도 없이 임시직과 저임금 알바 사이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또한 자기 부모가 실업자가 아닌데도 저임금 일자리에서 쉴 새 없이 일하며 지쳐가거나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분노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젊은이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밀매매에 가담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이웃 주민들의 일상을 망치기도 한다. 나엘의 죽음을 계기로 맹목적인 폭력으로 폭발한 것은 바로 이런 분노다.


특정 지구들을 강타한 파괴적 격분은 놀라움과 혼란, 심지어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부르주아들이 자기 자동차, 고급 레스토랑, 테니스장, 골프장 등이 연기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서비스센터, 식료품 상점, 출근할 교통수단이 없어져 노동자 계급의 여성과 남성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자기 여동생이 등록돼 있던 휴양 시설이나 자기 어머니가 치료받으러 가던 의료 버스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부수고 며칠 밤을 보낸 사람들의 행동은 심각한 인식 부족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지역 주민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데 아랑곳하지 않는 깡패와 밀매자들도 포함돼 있다.


이 맹목적 분노가 우세해져선 안 된다! 하지만 누가 이 젊은이들의 소요를 이끌고 그들에게 전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누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할 수 있을까? 누가 경찰이 그들을 존중하게 할까? 부는 넘쳐나지만 점점 더 탐욕스러워지는 거대 부르주아지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젊은이들의 파괴적 소요는 노동자 진영의 조직화 부족, 전투성 및 정치화 부족의 결과다. 이 젊은이들은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직공, 배달원, 창고 직원, 지게차 운전사, 웨이터, 요리사 등으로 일할 것이다. 이런 일을 그들의 형제, 자매 또는 부모가 이미 하고 있다. 따라서 길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우리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 모두의 몫이다.


우리 스스로를 조직하고 대기업, 경찰, 법원으로부터 존중받기 위해 투쟁해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다. 이런 전망은 사회 질서 전체에 도전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 왜냐면 더 나은 경찰이나 더 나은 법원을 바라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찰과 법원 뒤에는 부르주아지의 법이 있다. 이런 법은 노동자와 그 자녀들이 착취당하면서 최고 부자들에게 봉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마크롱 같은 정부가 2년 치 퇴직금을 강탈하게 해준다. 이런 법은 이윤 증식을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일 수도 있는 기생충 계급에게 모든 권력을 준다!


약탈과 파괴라는 방법으론, 전 세계를 산산조각 내고 지구를 파괴하며 인류를 착취하고 전쟁을 조장할 준비가 돼 있는 거대 부르주아지의 심장을 젊은 폭도들이 결코 찌를 수 없을 것이다.


폭력은 불의로 썩은 이 사회의 심장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거대 부르주아지로부터 사회 운영권을 빼앗아올 때만 평화와 정의를 얻을 수 있다. 생산의 주역인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스스로 권력을 장악하고 만인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사회를 조직할 때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출처: 프랑스 혁명적노동자조직 LO(노동자투쟁) 현장신문 1면 사설, 2023년 7월 3일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