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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국제
 

권리를 지키려면 싸워야 한다


  • 2025-02-23
  • 331 회

{다음은 2022년 9월 19일 주간에 나온 스파크 현장신문의 1면 사설이다.}


낙태와 불임수술을 포함한 다른 임신 문제에 대해 여성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놓고 올가을에 미시간 주에서 주민투표를 할 예정이다.


낙태를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여기엔 생명과 삶이 포함돼 있다. 태아의 잠재적 생명, 아기를 낳는 여성의 삶과 복지, 그리고 여성이 이미 낳았을 수 있는 아이들의 복지가 포함된다. 간단하면서 완성된 답은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관련된 생명과 삶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여성이 결정해야 한다.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야만적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여성이 이런 문제에 맞닥뜨려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에서 그런 결정권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적인 기능은 야만적이다. 너무 많은 아이들과 그들을 낳은 너무 많은 여성이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자신들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전시킬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1주일 넘게, 정치적 술책 때문에 주민투표가 연기될 것 같았다. 이것을 되돌리기 위해선 법원의 결정이 필요했다.


확실히 법원의 결정은 청원에 서명했고, 투표할 권리를 거부당했던 모든 사람에게 일종의 도덕적 승리였다. 그러나 도덕적 승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에 자신들의 편협한 견해를 강요하려고 오랫동안 돈을 쏟아부은 종교계는 올해 11월 투표[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돈은 이 소위 ‘민주주의’에서 필수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음과 같다. 만약 주민투표에서 가결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러면 여성이 낙태할 권리가 미시간 주 헌법에 명시돼, 아마도 영구적으로 보호받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 실수인가!


여성은 1960년대에 대규모 사회투쟁에 참여한 결과 낙태권을 얻었다. 그때의 실수는 1973년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낙태권을 보장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자마자 여성의 결정권은 파기되기 시작했다. 정부 자금으로 의료혜택을 받아 왔던 빈민 여성과 여성노동자들은 양당[공화당과 민주당]이 거부했기에 더 이상 그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낙태 병원을 폐쇄하기 위해 폭력, 테러, 양당이 통과시킨 법이 사용됐다. 낙태 시설을 절반으로 줄인 다음, 또 다시 줄였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온 지 겨우 17년 뒤인 1990년에 이르면, 모든 카운티의 87%에서 낙태할 수 있는 시설이나 의사가 없어졌다. 농촌 카운티에 사는 여성들은 어려움을 더 겪었다. 그런 카운티의 97%에 낙태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얻은 유일한 권리는 우리가 쟁취하려고 싸운 권리뿐이다.[투쟁 없이 쟁취 없다는 뜻.]


남북 전쟁이 끝나고 나서 미국 헌법에 대한 세 가지 수정안은 투표권을 포함한 완전한 시민권을 전 노예와 그 후손들에게까지 보장했다. 그러나 1940년대, 50년대, 60년대에 흑인이 대규모로 투쟁한 다음에야 마침내 흑인 후손들은 투표권을 얻을 수 있었다. 


1930년대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노동조합을 사장들에게 강요했다. 법을 바꾸게 했고 노동자들이 했던 일을 대법원이 인정하게 했다. 이후 정치인들은 법이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투쟁이 없는 오늘날에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법을 갖고 있지만, 권리를 갖고 있지 않고 노동조합도 거의 없다.[투쟁이 없으면 권리도 없다는 뜻.]


물론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원하는 여성들은 이 주민투표가 통과되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계급을 중심으로 조직된 이 사회에서 자기 권리를 영구적으로 보장받은 계급은 자본가계급뿐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권리란 날마다 투쟁해야 할 문제다.


“투쟁이 없으면 진보도 없다. 스스로 요구하지 않으면 [국민주권 같은] 권력은 껍데기뿐이다.” [미국의 대표적 노예해방론자]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말이다(1857년).


출처: 미국 혁명적노동자조직 스파크의 신문, 2022년 9월 26일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