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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국제
 

러시아 민중이 항의하다


  • 2025-02-23
  • 351 회

우크라이나 침공이 알려지자마자, 러시아의 군사 공격에 항의하기 위해 러시아 민중이 거리로 나섰다. 분명히, 많은 러시아 민중이 이 전쟁이 자신들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침공이 시작되던 날, 거의 54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최소한 1,745명이 체포됐는데, 그중 957명은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체포됐다. 경찰국가에서 거리로 나선다는 것은 용기와 결의를 보여준다. 이 시위대는 위험을 감수했다.


유명인사들이 침공 반대 성명을 냈다. 야권 인사인 타티아나 우스마노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전쟁 반대 온라인 청원에는 하루 만에 33만 명 넘게 서명했다. 


솔직하게 말했다고 언론인이 자주 살해당하는 나라에서, 250명 넘는 언론인이 성명서에 서명했다. 과학자 250명과 모스크바 시의원 194명이 자신들의 성명서에 서명했다. 인권운동가 마리나 리트비노비치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항의 동영상을 올렸다. “우리, 러시아인들은 푸틴이 일으킨 전쟁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전쟁은 우리를 위해 벌이고 있는 게 아니다.”


전쟁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깊게 나타나는 것은 많은 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 그리고  1991년까지는 같은 나라에 속해 있었던 다른 소비에트 공화국들과 연결돼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에 산다. 많은 러시아인의 가족이 우크라이나에 있다. 그것은 1917년 볼셰비키가 이끈 노동자계급 혁명의 유산이다.


볼셰비키의 정책들은 1차 대전 이전까지 러시아를 구성했던 광대한 땅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 자유롭고 의식적인 연합을 건설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들은 모든 언어와 문화를 장려했다. 그들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조지아인, 아제리인, 카자흐인 등등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거대한 계획 경제 안에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게 했다.


이런 공동의 발전은 1991년까지 지속됐다. 볼셰비키 혁명의 성과 대부분을 쓸어버린 지독한 스탈린주의 독재 상황에서도 말이다. 자신들의 지배 영역을 선포하고 싶어 했던 것은 모스크바, 민스크[벨라루스의 수도], 키에프[우크라이나의 수도]의 관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요새에서 군주가 되고, 부를 최대한 약탈하고 싶어 했다. 소련의 민중은 분리를 원치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다른 구소련 지역들 사이의 여행을 가로막고, 가족들을 갈라놓는 장벽이 생겼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끔찍한 경제적 붕괴와 관료들과 공직자들의 공공기업과 자원 약탈 때문에 고통받았다. 2014년에 우크라이나에선, 친서방 국수주의자들과 친러시아 지배자 파벌들이 내전으로 치달아갔다. 우크라이나는 제국주의 통치자들과 크레믈린이 혈투를 벌이는 전장으로 변했다.


푸틴의 전쟁에 맞선 러시아 민중의 시위는 수십 년 동안 소비에트 삶의 현실이었던, 우크라이인들에 대한 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러시아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편협한 민족주의 관점을 거부할 수 있고, 푸틴의 억압기구를 전형적인 노동자정부로 대체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출처: 미국 혁명적노동자조직 스파크의 신문, 2022년 2월 28일

<노동자투쟁> 온라인 기사


{참고로 말하면, 구소련과 러시아의 사회 성격에 대한 한국 <노동자투쟁> 그룹의 입장이 스파크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