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미국 농기계 제조업체] 존 디어 회사에서 10,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파업에 나섰다. 이것은 2019년 GM자동차 노동자 파업 이후로 가장 큰 파업이었다. 파업에 참여한 존 디어 공장은 모두 14개인데, 그중 절반이 아이오와 주에 있고, 나머지는 일리노이, 캔자스, 콜로라도, 조지아 주에 있다.
이것은 이번 가을에 여러 산업을 강타한 파업 물결의 일부였다. 프리토 레이, 나비스코, 켈로그 노동자들이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오하이오, 콜로라도, 조지아 등에서 파업을 이어갔다. 버팔로 시와 뉴욕 시의 간호사들과 의료노동자들도 파업에 돌입했다. 샌프란시스코 카이저 퍼머넌트의 건축기사들과 워싱턴 주의 목수들도 마찬가지다. 앨라배마에서 1,000명이 넘는 석탄 광부들, 펜실베니아에서 1,100명의 철강 노동자들, 매사추세츠에서 2,000명의 간호사들이 6개월 이상 길고 격렬한 파업에 참여해왔다.
다른 노동자들도 파업 날짜를 정했다. 오리건 주와 캘리포니아 주 카이저 퍼머넌트 병원의 간호사 24,000명과 다른 의료 종사자들, 같은 병원의 7000명의 기능직 노동자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영화와 TV 쇼를 위한 세트를 만드는 제작 노동자 60,000명 등등.
아마도 그것은 2020년 코로나 대유행 때문에 중단됐던 파업 흐름이 재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자동차 노동자들, 트럭 운전수, 교사,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50만 명 가까이 파업에 돌입했다.
2018, 19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이 모든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구체적 동기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노동자들은 공통적인 문제들을 겪고 있다. 최근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적절한 임금을 받지 못할 것이고, 진정한 은퇴를 할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현장 인력도 충분하지 않다. 일은 너무 많고, 일의 속도는 너무 빠르며, 노동시간은 너무 길다. 그래서 취업 노동자의 삶이 망가지고 있다. 사립학교의 교사직에서부터 캔자스의 조립라인, 공공기업의 숙련직, 간호실, 소매 계산대까지, 어디서든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몇몇 악덕 사장의 꼴불견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다. 문제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비합리적 작동방식 때문에 발생한다. 취업노동자들은 과로를 강요당한다. 동시에 많은 사람에겐 직장을 구할 기회조차 없다. 만약 간호사들이 충분히 고용된다면, 교사들이 충분히 고용된다면, 자동차 조립 라인에 노동자들이 충분히 고용된다면, 건설 노동자들이 충분히 고용된다면 우리의 직장 생활은 조금 견딜 만해질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영구 실업자들이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장은 없다. 적절한 임금을 줄 사장은 없다. 모든 사장은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다른 사장들과 경쟁한다. 그리고 이윤은 일을 최대한 많이 시키고, 노동자들을 최대한 적게 뽑고, 월급을 최대한 적게 줘서 뽑아낸다.
이 모든 문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만연해 있다. 이 문제들에 답하려면 이런 사회를 관통하는 투쟁들이 필요하다. 최대한 폭넓은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이 문제들이 단지 우리 부서, 우리 회사, 우리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라면, 우리 계급의 적에 맞서 함께 공동투쟁을 벌이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하지만 누군가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동시에 파업할 수 없다. 계약 형태와 법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를 억압하려고 만들어진 법과 계약을 우리가 왜 존중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노동자들이 따로따로 파업하는 방식을 지속해야 하는가? 그럴 경우 우리에게 필요한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데 말이다.
팬데믹 동안, 우리는 ‘필수 노동자’란 말을 들었다.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필수적이다. 우리 모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우리는 숫자 덕분에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숫자를 활용해야 하고, 하나로 단결시켜야 하며, 공동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출처: 미국 혁명적노동자조직 스파크의 신문, 2021년 10월 17일
<노동자투쟁>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