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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국제
 

경찰 폭력과 재앙적 실업 -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 2025-02-16
  • 303 회

경찰 폭력과 재앙적 실업

-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지난주에 새로 150만 명이 실업수당을 청구했을 때, 거의 모든 언론이 이렇게 헤드라인을 뽑았다 – 실업이 ‘바닥을 치고 있다’.


‘바닥을 쳤다’고? 의미 없는 헛소리다. 실업은 재앙적이다. 흑인 대중에겐 훨씬 더 재앙적이다. 그들은 항상 ‘가장 늦게 고용되고, 가장 먼저 잘렸다’.


오늘날 모든 걸 운영하는 자본가계급은 모두가 넉넉한 임금의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간주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하면서 인종차별주의적 태도로 나아가면, 자본가들은 그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사회 문제들’이라고만 한다.


이런 ‘사회문제들’은 자기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경찰 폭력이 필요한 사회 계급, 즉 자본가계급 때문에 발생한다.


오랫동안 많은 흑인 활동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흑인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면, 다른 누구의 생명도 소중하지 않다”[다른 사람들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사실을 정확히 바라본다면, 그것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흑인을 폭행하는 경찰이 상당수의 백인도 폭행한다. 그들은 흑인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폭행하지만, 백인도, 특히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도 경찰의 폭행을 피할 수 없다.


사실 흑인보다 백인이 경찰한테 더 많이 살해당한다. 그리고 히스패닉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고통받는다.[지난해 경찰에 사살된 백인은 370명, 흑인은 235명, 히스패닉은 158명이었다. 미국 인구 중 백인이 76%이고 흑인이 13%인 것을 고려하면, 흑인이 백인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경찰한테 살해당했지만 절대적으로는 백인이 더 많이 살해당했다.]


최근의 사회적 폭발들을 보면, 드디어 더 많은 백인이 이런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에 대해서도 현실은 똑같다. 흑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줄어들면 다른 노동자들의 생활수준도 안정적일 수 없다. 물론 백인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기 전에 조금 더 오랫동안 자기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 그들의 임금이 약간 더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단지 빵부스러기일 뿐이다. 체제가 하나의 위기에서 다른 위기로 치달아, 실업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데 빵부스러기가 얼마나 가치가 있겠는가?


이윤을 충분히 많이 남길 수 없는 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더 이상 고용하려 하지 않기에, 재앙적 실업이 발생한다.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켜 이윤을 쌓으려는 자본가들의 탐욕은 우리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다.


이 나라엔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실업자들도 많다. 다리와 댐이 무너지고, 도로가 부서지고 있다. 학교엔 물자와 교직원이 부족하다. 하지만 공적자금이 자본가들에게로 흘러들어가기에, 아무것도 이뤄지는 게 없다.


우리가 미시건 주 플린트 사태[납 오염 수돗물 사태]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상수도 시설을 수리해야 한다. 여름 폭풍 때 정전사태가 일어나는 전기 시스템에도 전선을 수리하고, 전선을 위협하는 나뭇가지들을 치는 노동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윤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고용되지 않고 있다.


지금 가동되고 있는 모든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너무 많이 일하고, 라인 속도는 너무 빨리 돌고 있다. 전염병에 안 걸리도록 작업공간을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고 있다. 노동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건 이윤을 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다. 그리고 여기엔 ‘사회적 답’이 필요하다. 그것은 경찰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실업을 필요로 하는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한 투쟁이다.


젊은이들이 이번에 싸우기 시작했다. 3주 전까지는 많은 노동자가 이런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도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대규모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 더 나이든 사람들이 부끄럽게 말이다. 이런 젊은이들의 다수는 노동자계급 출신들인데, 일자리나 넉넉한 임금에 대한 희망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투쟁을 젊은이들이 먼저 시작한다는 것은 자주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투쟁들은 현장, 즉 노동자계급이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중심인 현장에 불을 밝게 비춰줄 수도 있다. 오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내일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실업자가 내일 현장에서 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투쟁목표는 모두 같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이런 똑같은 경찰폭력에 맞서야 하듯 말이다.


이런 문제를 지금 현장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출처: 미국 혁명적노동자조직 스파크 신문 1면, 2020년 6월 15일자

<노동자투쟁>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