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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국제
 

두 위기(코로나와 실업), 하나의 답


  • 2025-02-17
  • 316 회

두 위기(코로나와 실업), 하나의 답

 

[미국의 코로나19 누적확진자는 500만 명, 사망자는 16만 명을 넘었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2.9%로 역대 최악이다. 아래 글은 이런 두 위기의 답은 하나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두 위기로 두들겨 맞고 있다. 하나는 공중보건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위기다. 둘은 똑같은 근본 원인에서 나온 것이다 - 완전히 무정부적이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자본주의 작동방식.

 

코로나193,4월 때보다 지금 훨씬 더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그때는 시애틀, 뉴욕시, 디트로이트와 뉴올리언즈만 심각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주가 심각하다.

 

이렇게 될 필요는 없었다. 3,4월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바이러스가 존재하며, 한번 들어오면 널리 퍼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았을 때, 정부는 [의지만 있다면] 닥칠 일을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병원을 마련하고,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력을 충분히 충원하며, 코로나19 진단키트와 보호장비를 생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창궐하기 전에 감염자를 찾기 위한 진단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대신, 대부분의 주는 바이러스가 퍼지도록, 그것도 빠르게 퍼지도록 방치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일할 때는 적절한 보호대책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지도 않은 채, 회사들이 영업을 벌이게 했다. 주 정부들은 공중보건의 위험을 무시하고 사업을 중시했다.

 

이 바이러스는 정말 전염성이 강하다. 하지만 진단만 잘하면, 누가 감염됐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아픈 사람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적절한 조건에서 격리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병이 전염되지 않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복잡하지 않다. 그건 기본 공중보건 절차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재정이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다. 연방정부가 의료장비를 충분히 비축하기 위해 써야 하는 재정, 주 정부들이 잘 운영되고 인력이 충분한 공공의료 부서들에 사용해야 하는 재정 말이다.

 

하지만 공공의료에는 재정이 거의 지출되지 않았다. 도로, 다리, 터널, 상하수도 시스템과 댐, 심지어는 학교에도 공적자금이 제대로 지출되지 않았듯이 말이다. 대신에 공적자금은 모든 대기업과 대부분의 중소기업에 감세, 보조금, 공짜 선물을 주기 위해 사용됐다.

 

공적자금은 사적 이윤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래서 이처럼 이윤 추구에 기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두 영역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하나는 공중보건의 위기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대부분의 일상을 정지시키고, 수백만 사람들의 일자리를 앗아가며, 대다수 사람의 소득을 줄여 경제를 망가뜨렸다.

 

오늘날 경제는 붕괴 상태에 있다. 경제는 겨우 3.5개월 동안에, 1930년대 대공황 때의 첫 3.5년 동안만큼이나 많이 무너졌다.

 

바이러스에 대비하기 위한 휴업이 급브레이크 역할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3,4월 전에도 전체 경제는 펑크 난 자동차처럼 붕괴를 향해 미끄러지고 있었다. 실제 실업률은 매우 높았다. 대부분의 젊은이에겐 정규직 자리가 없었다.

 

오늘날의 공중보건 위기에서, 무엇이 필요한가는 명백하다. 필수 노동자들이 필요하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항상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작업공간은 거리두기가 가능하도록 넉넉해야 한다. 임금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사람들의 건강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공중위생을 우선에 둬야 한다. 임금은 올라야 하고, 병가는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 그래서 아플 때도 일하러 와야 한다는 부담을 누구도 느끼지 않아야 한다.

 

이 모든 건 많은 사람이 고용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것은 코로나 위기에 대한 부분적 해법이자 실업 위기에 대한 부분적 해법이다.

 

다른 사안들에서도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아이들의 발달을 위하고 그들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하는 보육이 이뤄지려면, 더 많은 사람이 보육노동에 참여해야 한다. 노인들의 과거 삶과 현재의 모습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노인들을 돌보려면, 더 많은 사람이 그 일에 동참해야 한다.

 

이것들이 분명한 답이다. 하지만 이런 답을 생각할 수 있는 건 오직 노동자계급뿐이다.

 

출처: 미국 혁명적노동자조직 스파크 신문, 20208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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