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매체는 찰리 커크의 암살을 ‘심판의 날’을 알리고 나라를 하나로 통합시킬 기회를 준 비극적 사건인 듯 다루고 있다. 유타 주지사 스펜서 콕스가 최근 며칠간 반복해서 말했듯이 "지금이 우리의 순간입니다. 우리는 갈등을 심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출구를 찾을 것인가?" 이 모든 것은 폭력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것은 위기 시기에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전형적인 단결 메시지로, 민주당도 기꺼이 동조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광신적 좌파’라고 부르는 세력을 더 맹렬히 비난했다. 그리고 이를 집권 첫날부터 밀어붙였던 억압적 폭력을 증가시키는 또 하나의 구실로 삼았다.
마치 신호라도 받은 듯이, 언론매체, 학교 및 기타 기업들은 트럼프의 비난에 호응해 어디선가 한 말이나 글을 이유로 수많은 사람을 해고했다. 이런 해고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다. 이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사람을 위협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결’과 ‘모두 함께’라는 온갖 공문구를 내세우며, 대기업들과 정부기관 책임자들은 계속해서 [민중을] 폭력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사장이 본떼를 보이기 위해 한 사람과 그 가족의 생계를 빼앗는 것을 폭력 말고 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모든 학교 총격 사건, 대량 살인, 정치적 암살이 새로운 폭력의 시대를 나타낸다고 들었다. 하지만 끔찍한 폭력은 항상 이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흑인 혁명 투사 H. 랩 브라운이 1967년에 말했듯이, “폭력은 체리 파이만큼이나 미국적이다.”
1967년에도 그랬는데, 오늘날에는 훨씬 더 그렇다. 극소수 자본가 계급과 억만장자들이 전체 경제 체제와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모든 것은 그들의 이윤과 부를 늘리기 위해 운영된다. 그들은 더 적은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노동을 갈취한다. 일자리를 줄인다. 임금과 복지를 삭감한다. 가격을 올려서 노동자들이 자신이 만든 것을 살 수 없게 하고, 거처를 마련하는 것도 갈수록 어려워지게 만든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투자를 옮겨, 기존 지역을 황폐화한다. 상당수 노동자에게 일자리가 없고 젊은이들에겐 미래가 없다.
이런 것을 민중에게 강요하려면 엄청난 양의 폭력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파업과 노조를 파괴하려 한다. 경찰은 정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흑인들, 많은 가난한 백인과 이민자들도 총으로 쏴 죽인다.
살해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종종 감옥에 갇힌다. 이 나라에는 언제나 200만 명 이상이 감옥에 있다. 이 수치는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크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 거의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 계급 출신이다. 이는 또한 노동자 계급의 상당수에게 어떤 형태든 전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장들은 이를 종종 이용한다.
동시에 이 사회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서로 싸우게 만들기 위해 인종주의와 온갖 종류의 편견을 조장하며, 인종차별적 폭력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부추긴다.
이것이 이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보여준다—평상시에도 말이다. 오늘날 폭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자본가들은 사회를 쥐어짜 더욱 부유해지고, 점점 더 폭력적이고 비열하게 민중을 지배하고 있다.
극소수의 이윤을 위해 운영되는 사회에선 폭력 말고는 답이 없다. 답은 노동자 계급에서 나와야 한다. 경제와 전체 사회의 중심에 있는 것은 노동자 계급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사회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조직할 수 있는 수단을 갖는다. 노동자 계급은 극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전 인류의 이익을 위해 사회를 운영할 것이다.
출처: 미국 혁명적 노동자 조직 스파크의 신문, 2025년 9월 15일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70호, 2025년 9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