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격하면서 3차 대전으로 향하는 문을 발로 걷어차 열어젖혔다.
물론 트럼프는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할 때 명분을 갖다 붙였다. 전쟁광들이 늘 그러듯이 말이다.
그는 이란 정권이 자국민을 죽이고 수천 명을 감옥에 가뒀다고 비난했다.
그건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미국은 가자지구 학살을 이유로 이스라엘을 공격했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수많은 사람을 수감시킨 것을 이유로 미국을 공격했어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은 이란의 도발 때문에 시작된 게 아니다. 미국은 침략당하지 않았다. 이란은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했다.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도 없었고, 핵무기도 없었다. 지금까지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한 유일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이란에 맞선 전쟁은 의식적이고 고의적인 선택이었다.
이것은 곧 이 전쟁이 미국의 정책이며, 단순히 트럼프 개인이 아닌 미국 자본가 계급 전체의 정책임을 의미한다. 만약 이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자들이 트럼프의 전쟁에 반대했다면, 그는 금빛 노리개나 챙겨 들고 백악관에서 이미 쫓겨났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 전체가 장기 금융 위기의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자본가 계급의 주요한 일부는 AI 벤처, 암호화폐, 부동산에 투기하며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윤보다 더 많은 돈을 주주들에게 쏟아붓고 있고, 그러기 위해 회사를 빚더미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실물 경제는 굼뜨게 움직이고 있다. 기업 부채, 정부 부채 등 빚이 쌓여가고, 서민들은 빚더미에 숨이 막혀간다.
미국 경제와 중국 경제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중 두 나라는 갈수록 첨예해지는 파괴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 모순적인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 것인지 질문한다. 그러니까, 이것이 언제 전쟁으로 폭발할 것인지를 말이다.
그런 전쟁은 아직 미래의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자본주의는 트럼프를 앞세워 오늘날 눈엣가시들을 제거하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는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나라들에 규율을 강제하려 하고 있다.
이란이 그런 나라들 중 하나이고, 베네수엘라도 그랬으며, 쿠바도 그렇고, 러시아도 그렇다. 세계 교역의 중심에 있는 중동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는 운송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비료 생산과 반도체용 헬륨 생산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린란드와 캐나다는 어떤가? 그 나라들을 겨냥한 트럼프의 협박은 그저 ‘트럼프가 트럼프답게 구는 것’일 뿐일까? 또 다른 협상의 기술일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답게 구는 트럼프’야말로, 미국 자본주의가 3차 대전으로 가는 길에 필요로 하는 앞잡이다.
트럼프는 지난 1년 동안 원하지 않는 전쟁을 받아들이도록 미국 민중을 준비시키려 했다. 반대자들은 민사소송과 형사 고발에 묶여 꼼짝 못하게 된다. 사건들은 결국 기각되지만, 그전까지 피해자들은 시간과 돈을 잔뜩 낭비할 수밖에 없다. 전쟁이나 트럼프의 제반 정책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겐 — 비공식 차원에서 — 반역죄의 혐의가 씌워진다. 나아가 1차 대전 때 "내란 선동"을 겨냥해 만들어진 법률들이 먼지를 털고 다시 꺼내져 — 이제는 공식적으로 — 재가동되고 있다.
이민자 탄압은 전체 민중을 길들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노동자 계급의 일부가 우리 계급의 나머지로부터 잘려나가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군사력을 갖춘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도시들에 투입되고, 창고와 천막에 수용소가 세워지며, 법적 권리는 박탈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가 전쟁에 휩싸이면, 국내에서도 처참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뒤통수를 맞아선 안 된다.
출처: 미국 혁명적 노동자 조직 스파크의 현장신문 1면 사설, 2026년 3월 22일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