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팜플렛 발간 안내
<국제주의 – 자본주의 착취와 국경이 없는 세상을 위한 투쟁>
영국 워커스파이트 그룹 지음, 노동자투쟁(서울) 옮김, 54쪽, 3000원
목차
들어가며
민족주의 – 최근에 만들어진 사상
고통스럽게 탄생한 ‘위대한 민족국가’
노동자계급과 세계 시장
실질적인 국제주의
19세기의 ‘세계화’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제국주의 단계
노동자 계급 운동과 제국주의
국제주의 대 사회배외주의
세계 혁명을 향해
사회배외주의로 돌아가다
‘세계화’ 천국을 향해?
아니면 ‘세계화’ 악마의 위협?
희극인 민족주의
비극인 민족주의
국제주의 전망을 위해
발간사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마스가 선제 기습공격을 했으므로 이스라엘에 정당방위권이 있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이 미 제국주의의 경비견으로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점령하고 억압해 왔으므로 하마스를 무조건 지지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스라엘과 그 뒤의 제국주의 강대국들을 훨씬 더 비판하되, 한 민족을 다른 민족과 대립시키고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죽이는 하마스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정확히 비판하면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주장할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또 어떻게 볼 것인가? 강대국 러시아의 푸틴 정권이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선제공격을 했기에, 민족자결권을 강조하며 우크라이나를 방어할 것인가? 아니면 미 제국주의가 러시아를 수십 년 동안 포위하고 압박해 왔고, 우크라이나인들을 총알받이로 활용해 대리전을 벌이고 있으므로 러시아를 방어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이며 어느 쪽도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보고 “적은 국내에 있다”고 주장하며 각국에서 자기 지배계급에 맞선 계급투쟁과 노동자 국제연대를 추구할 것인가?
세계경제위기가 깊어지고 미중 갈등이 격해지면서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런 보호무역주의는 불가피하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자유무역주의가 더 바람직하다고 볼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보호무역주의와 자유무역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인가?
이런 문제는 오늘날 노동자계급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왜냐면 어떤 입장을 택하는가에 따라 노동자계급이 이러저러한 지배계급에 줄을 서면서 계급적 독자성을 상실하고, 1차 대전 때 사민주의자들을 따랐던 노동자들처럼 타국 노동자를 상대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을 맞을 수도 있고, 반대로 계급적 독자성을 굳게 사수한 채 노동자 국제연대를 통해 모든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을 향해 올곧게 전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이 팜플렛에서 얻을 수 있다. 이 팜플렛은 민족주의란 착취당하는 대중을 속이기 위한 장치이자 경쟁하는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장치로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보호무역 체제는 보수적인 반면, 자유무역 체제는 파괴적이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고, 노동자 계급의 운명이 자본의 정책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노동자의 물질적 조건은 관세가 아니라 계급투쟁에서 쟁취한 역관계에 달려 있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제시한다.
또한 제1 인터내셔널부터 제4 인터내셔널까지 노동자계급이 국제연대를 추구해왔던 역사를 조망한다. 가령, 민족문제에 대한 초기 코민테른의 입장도 중요하게 다룬다. “제3인터내셔널은 제2인터내셔널이 활동했던 국가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제3인터내셔널은 빈곤 국가를 직접 겨냥한 정책도 제시했다. 이들 국가 대부분에는 어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운동도 없었고, 산업 프롤레타리아트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의 억압 때문에 이런 운동은 극빈층 사이에서 거대한 잠재적 사회 기반을 얻었다. 그래서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이런 민족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공산주의 세력을 민족주의 운동 안에서 조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과제를 설정했다. … 공산주의 조직이 존재하는 빈곤 국가라면 어디든, 노동자 계급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다른 계급과 분리된 채로 조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운동이나 식민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투쟁에서 [반제국주의] 전선을 형성하는 것과, 노동자 계급이나 빈민 대중의 이익을 민족주의적 소부르주아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반대로 이 전선은 프롤레타리아 강령에 기초해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주도권을 민족주의자들의 손에서 빼앗아 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했다.” 이 내용은 빈곤국이나 피억압민족의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태도를 정립할 때 매우 중요하다. 초기 코민테른은 민족해방만 추구하는 편협한 민족주의자의 관점이 아니라 세계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민족문제를 일관되게 바라봤다.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레닌이 다음과 같이 연설했던 것도 이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코민테른과 각국 공산당이 후진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히는 것이 원칙적으로 또 이론적으로도 올바른가의 여부에 대해 논쟁했다. 이 논쟁의 결과 우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운동’ 대신 민족혁명운동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적당하다는 만장일치의 결정에 도달했다. … 만일 우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운동 운운하게 되면 개량주의운동과 혁명운동 사이의 구별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구별은 최근 후진 식민지 제국에서 완전히 명료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 우리는 이 구별을 고려하여,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이라는 표현 대신 ‘민족혁명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표현 변화의 본뜻은, 공산주의자로서 우리는 식민지 국가의 부르주아적 해방운동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경우에만, 또 우리가 농민 및 광범위한 피착취 대중을 혁명적 정신으로 교육·조직하려고 하는 것을 운동의 대표자가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만 부르주아적 해방운동을 지지해야 하며 또 지지할 것이라는 뜻이다. 만일 이러한 조건들이 없다면, 공산주의자는 이들 나라에서 개량주의적 부르주아에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민족·식민지 문제에 대한 위원회 보고>, 『코민테른 자료선집』 3권, 233-234쪽)
이 내용은 하마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마스가 과연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을 넘어서는 ‘민족혁명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마스가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농민 및 광범위한 피착취 대중을 혁명적 정신으로 교육·조직하려고 하는 것을 운동의 대표자가 방해하지 않는 경우”라고 볼 수 있는가? 그리고 오늘날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두 분명하게 “프롤레타리아 강령에 기초해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주도권을 민족주의자들의 손에서 빼앗아 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이 팜플렛은 이른바 ‘세계화’와 최근의 민족주의 부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도 체계적으로 밝힌다. 그 과정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사태의 교훈도 다루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하다. “[민족주의자들 중]일부는 제국주의 열강의 손에 놀아난 졸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다른 이들은 침략자의 편이 아닌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들 모두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즉, 자신들이 그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든 상관없이, ‘그들의’ 주민을 다른 주민들로부터 고립시키고 다른 주민들을 희생시키면서 '그들'의 국가를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대가는 전쟁 자체에 따른 고통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세워진 피의 벽도 훨씬 넘어선다. 그것은 관련된 모든 사람이 훨씬 더 빈곤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면 전혀 생존할 수 없는 상태에 갇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그들에게 감옥과도 같다).”
마지막으로 이 팜플렛은 “계급 투쟁에서 싸우기 위해 인종, 종교, 국가의 장벽을 넘어 단결할 수 있는 능력을 여러 번 보여준 노동자 계급이라는 강력한 지렛대”에 기초해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혁명적 노동자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정치·군사적 위기가 가득한 세계에서 노동자계급이 나아갈 길을 찾으려고 하는 이들에게 이 팜플렛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