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명의 ‘면허 취소’ 발언은 쇼인가?
포스코이앤씨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8월 6일 이재명은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모든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김영훈 노동부장관에겐 “산재가 안 줄어들면 직을 걸라”고 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언론에선 ‘사이다 발언’ 운운한다. 그런데 국토부 산하 기관인 항철위(항공철도사고조사위)는 작년 8월의 구로역 사망사고를 작업자 개인 과실로 계속 몰아가려 하고 있다. 고구마 100개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이재명의 발언은 생색내기 쇼일 뿐인가?
■ 노동자의 정의는 승리한다
부당한 병가 통제에 맞서 싸워 승리했다. 아픈 기관사에게 출근을 강요한 것이 문제라고 사업소는 처음에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을 무기로 들고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발 방지 약속까지 받아낸 것은 투쟁의 성과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력이 근본적으로 부족해 사측은 이 약속을 뒤엎을 수 있다. 코로나 때도 분명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력 충원까지 요구하고 쟁취해야 한다. 노동자의 정의는 승리한다. 우리가 단결해서 싸운다면 말이다.
■ 사회복무요원이 있고, 없고의 차이
PSD 고장이 잦은 요즘, 그래도 사회복무요원이 있는 역은 역무원들이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런데 위탁역에는 사회복무요원이 없어서 돌발상황이 벌어졌을 때 빠르게 대처하기 어렵다. 역무원은 몸이 두 개가 아니니까. PSD가 고장 나거나, 진상고객이 난동을 부리거나, 노약자·장애인 안내가 필요하거나 하는 상황이 겹치면 정신이 없다.
따지고 보면 원래 철도 직원을 배치해야 할 자리에 인건비 아끼려고 편법을 쓰는 것이기에 사회복무요원 배치도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인력을 제대로 충원하지 않으면 철도 안전도 없다!
■ 기재부 지침을 바꿔 위탁비 전액을 임금으로!
코레일네트웍스는 2020년부터 위탁비가 개선되며 대폭 인상됐다. 하지만 사측은 여전히 “기재부 총인건비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며 위탁비 전액을 임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중간착취한다. 지난 7월 30일 공공기관 운영위원회(공운위)가 통상임금 대법 판결 기준을 반영해 공공기관 총인건비 모수를 증액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총인건비 지침을 방패 삼아 노동자의 위탁비를 가로채는 관행도 중단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선해야 한다. 더 많은 노동자가 더 큰 목소리로 사측과 정부에 지침 개선을 요구하자! 우리의 임금을 한 푼도 빼앗겨서는 안 된다.
■ 일하다 쓰러져야 대책 마련?
32-33도에 이르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폭염 땐 시설노동자들이 선로 점검과 보수, 제초 작업, 살수 작업을 위해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고,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것도 힘들다. 고속열차가 운행되는 고속선에는 자동살수장치가 설치돼 있지만, 일반선, 통근선, 지하철 노선 등 대부분의 구간에선 여전히 노동자가 직접 물통을 나르며 레일에 물을 뿌려야 한다. 그런데 코레일 사측과 정부는 지금까지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않고 있다. 누군가 일하다 쓰러지기 전까진 계속 나 몰라라 할 건가?
■ 코레일 사측의 헛소리에 맞서자!
“허리 통증으로 병가를 제출했지만, 허리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냐고 견디라고 했습니다.”
“팀장이 차단작업이 있는 날은 연‧병가 내지 말라고 해요.”
노조 소식지에 올라온 시설 분야 동료의 말이다.
코레일 경영진은 이렇게 현장 곳곳에서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인력 부족을 메꿔왔다. 저들은 늘 “인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중요한 건 단 하나다. 우리는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으며 일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인력 충원하라!
■ [철도노조 80년사]
여름을 뜨겁게 달군 88년 7.26 기관사 파업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한국 노동자계급은 역사의 무대에 뛰어올랐다. 그런 사회분위기에서 철도청이 다이아(철도운행표)를 개악해 서울-부산 구간을 기관사 교대 없이 강제로 운행하려 하자 불만이 폭발했다. 어용노조 집행부가 형편없는 내용으로 사측과 합의하자, 7월 15일부터 4-500여 명이 용산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지도부도 어용노조와 합의해 투쟁을 꺾으려 했으나, 노동자들이 강력히 반발해 7월 26일 전면파업에 나섰다. 전국의 열차가 멈췄다. 노태우 정부는 경찰을 투입해 1,463명을 연행했다. 비록 파업은 끝났지만, 노동자들은 이 파업으로 단결투쟁력을 강화해 1994년에 서울‧부산지하철 노동자들과 역사적인 공동파업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