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야합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관료주의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의 이해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최저임금을 보라. 자본가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계속 우겨 왔다. 결국 최저임금이 역대 최저로 1.5%(130원) 오르자, “인상은 아쉽지만 수용”한다고 역겹게 얘기했다. 실업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본가들이 이윤을 지키려고 수백만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신규채용은 거부해 실업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본가들의 이윤보따리를 지키기 위해 탄력근로제 확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처럼 자본가들과 정부가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죄다 떠넘기기 위해 공격하고 있는데 ‘사회적 대화’로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가?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에서 두 번이나 거부당했는데도, 코로나19를 핑계로 노사정 대화를 제안하고 참여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노동자 권리는 없고 자본가 권리만 가득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해고 금지’, ‘전 국민 고용보험제’ 등을 노사정 대화의 핵심요구로 제시했다. 그런데 합의안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해고 금지’가 없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 요구도 ‘연말까지 로드맵을 수립한다’는 빈껍데기만 담겼다.
결국 민주노총의 핵심요구는 하나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대신 노동자들의 권리를 통째로 내주고 있다. 합의안에 따르면 자본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도 경영사정이 어렵다고 하면서 무급휴직을 실시할 수 있다. 그리고 법정 휴업수당을 감액해 달라고 신청하면 정부가 ‘신속히 심사’하겠다고 한다. 무급휴직을 더 쉽게 하고, 휴업수당조차 삭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건 노동자를 어떻게 공격할지만 궁리하고 있을 자본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노사정 합의안은 ‘코로나19로 생존 위기에 내몰린 취약계층 보호’를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만, 실제론 취약계층 노동자를 확실하게 내팽개치고 있다.
노조가 있는 노동자들은 안전할까? 그렇지 않다. “노동계는 …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에 적극 협력한다”는 대목이 있다. 자본가가 경영위기를 구실로 ‘근로시간 단축, 휴업’을 요구하면 노동자들은 임금 손실을 감수하면서 적극 협력하라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휴업은 정리해고로 가는 수순이기도 하므로, 이것은 자본가들이 정리해고 칼을 갈도록 노동자들이 적극 협력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노사정 합의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협조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경제위기의 책임은 자본가들과 정부한테 있는데, 노사정 합의안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자기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정권에 협조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자본가처럼 그 하수인도 매우 비민주적이다
노동자 권리를 팔아먹는 노조 관료는 노동자 민주주의도 짓밟을 수밖에 없다. 김명환 위원장은 청와대, 총리 관저 등에 뻔질나게 다니면서 자본가나 대통령, 총리, 장관 등과 숱하게 대화했다. 심지어는 야합하기 위해 김명환 위원장은 6월 30일 오전 1시 30분부터 3시까지, 즉 모두가 잠든 심야에 노동부 장관과 만나 밀실 협상을 했다. 타락한 노조관료들은 항상 이렇게 노동자들 모르게 노동자의 운명을 놓고 적들과 거래해 왔다.
7월 1일 총리 공관에서 오전 10시 30분에 노사정 협약식을 예정해 놓고, 오전 9시에 민주노총 중집 회의를 소집했다. 이미 야합한 후, 민주노총 중집 회의를 매우 형식적으로 거친 다음 적들의 품으로 달려가려 했던 게 아닌가?
이런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느낀 민주노총 조합원 100여 명이 민주노총 중집에 참관하겠다고 하자, 김명환 위원장은 한사코 거부했다. 노조관료의 귀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와 그 정치가들에게만 열려 있었다.
그리고 민주노총 중집에서 다수가 강하게 반대하는데도, 노사정 야합안을 폐기하지 않고 온라인 대의원대회(7월 23일)를 위원장 직권으로 개최해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고통을 떠넘기려고, 자본가처럼 그 하수인도 매우 저돌적으로 나서고 있다.
노사정 야합과 관료주의의 뿌리
독점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시대에 노동조합은 국가권력과 유착하고, 노동자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노동자를 통제하는 뚜렷한 경향을 보여 왔다.
이것은 한국에서 IMF 위기 이후 특히 두드러졌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사정위에 들어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에 합의했다. 이후 대량해고가 잇따라 벌어졌고, 비정규직은 홍수처럼 불어났다. 현대차, 기아차를 비롯해 수많은 ‘민주노조’ 집행부가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를 불문하고 임금삭감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삭감할지를 두고,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해고할지를 두고 자본, 정권과 밀실교섭을 하고, 직권조인을 자행해 왔다.
노동자 권리를 지키려 해야만 노동자민주주의도 지킬 수 있다. 노동자 권리를 내주려 하면 노동자민주주의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임금·복지 삭감과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려 하는 노조 관료가 어떻게 모든 교섭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어떻게 모든 문제에 대해 노동자들이 민주적이고 집단적이며 의식적으로 결정하도록 보장하겠는가?
그래서 IMF 위기 이후 약 20년 동안 관료주의가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숨통을 죄어왔다. 민주노총 중앙은 물론이고 산별노조, 지역본부, 대사업장, 심지어는 적지 않은 비정규직 노조에서도 관료주의가 독버섯처럼 퍼져 왔다. 가령,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이었던 라두식은 정보경찰을 매개로 비공개 ‘핫라인’(비선)을 만들어 삼성 측과 내통하면서, 사측이 원하는 협상안을 노조에 관철하기도 했다. 이번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의 악랄한 관료주의는 이처럼 한국 민주노조운동을 병들게 해온 관료주의의 극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것은 앞으로 경제위기가 깊어지면서 더욱 더 끔찍하게 드러날 관료주의를 예고하고 있다.
누가 살 건가? 노동자인가 자본가인가?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는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높이 내걸어야 한다. 모든 해고 금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 최저임금 대폭 인상, 기업 회계장부 공개 등등. 자본가들과 정부는 이런 요구를 절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 그런 요구는 절대 들어줄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와 자본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그렇기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본가들의 이윤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끝없이 희생당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자본가세상을 바꿀 단호한 대중투쟁으로 나아갈 것인가?
한 줌 착취자들의 이윤을 위해 압도적 다수 노동자가 계속 희생당할 순 없다. 이윤 대신 사회적 필요를 우선에 두는 노동자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운동을 현장을 기초로 힘차게 전개해야 한다.
<노동자투쟁> 온라인 기사(2020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