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설명: 1989년 12월 연세대 대강당에서 ‘전노협 건설’을 위해 연출한 노래판굿 <꽃다지>의 한 장면.(꽃다지 홈페이지)
1991년 5월 6일, 한진중공업노조 박창수 위원장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대우조선노조 파업 지원방안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후 3개월 만이었다. 노태우 정권의 폭력경찰은 영안실 벽을 해머로 뚫고 들어와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고 강제로 부검한 뒤 그가 자진 투신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안기부와 노태우 정권이 살해한 것이다. 그 이유는 열사가 노조 민주화 후 즉시 한진중공업노조를 이끌어 전노협에 가입했고, 온갖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노동해방’, ‘평등사회’를 외쳤던 전노협의 깃발을 지켰기 때문이다.
전노협 깃발 아래 뭉친 선진 노동자들은 공장 담벼락을 뛰어넘은 지역 동맹파업, 폭력경찰의 울산 노동자 탄압에 맞선 전국 총파업 등으로 ‘노동자는 하나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비록 좌절됐지만 전노협의 역사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며 이기주의를 뛰어넘어 단결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렇게 자본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는 노동자의 기상과 (비록 정치적으로 아주 명확하지 않았을지라도)노동해방에 대한 꿈이야말로 자본가계급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전노협에 대한 극렬 탄압은 노동해방의 전망을 움켜쥐려는 노동자 계급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시도였다. 전노협 6년 동안 2천여 명의 노동자가 구속되고, 5천 명 이상이 해고됐다. 이런 야만적 탄압에 큰 타격을 입고 소련 붕괴 이후 선진 활동가들이 정치·사상적으로 후퇴하며 전노협 정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소련 붕괴와 전노협 해소 이후 대다수 노동운동 세력은 ‘노동해방’을 스스로 포기해 개량주의 운동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런데 대자본가들이 정치·경제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주의에서 일시적 개량은 언제든 후퇴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계급 해방의 의지를 가지고 자본주의를 철폐하기 위한 의식적 투쟁에 나서야 한다. 온몸을 걸고 노동자 계급의 선두에서 싸웠던 전노협의 역사에서 ‘노동해방’의 정신을 배우고 계승하자. 스탈린 치하 소련, 중국, 북한 등은 우리가 추구할 ‘노동자 해방 세상’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전노협의 한계도 극복할 혁명적 노동자당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하자.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63호, 2025년 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