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탄핵 심판 당시에도 기무사는 계엄령 준비 문건을 작성했다. 박근혜 퇴진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목적이었다. 2018년에는 계엄령 문건 작성, 세월호 민간인 사찰, 댓글공작 등 이른바 '3대 불법행위' 가담자 위주로 기무사 인원이 대폭 축소된다. 그런데도 2017년 계엄 계획에서 많은 부분이 2024년에 현실화됐다. 국회의사당에 병력을 투입하고, 육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을 건너뛰어 계엄사령관을 맡는 것 등등. 기무사의 후신인 방첩사 사령관이 2017년 문건을 참조해 계엄 포고령을 작성하기도 했다.
국군은 정치적 중립과 문민통제 원칙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 원칙은 진실을 가리는 허구일 뿐이다.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는 짧은 순간이나마 2024년에도 군대가 노동자·민중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현재로서는 의회민주주의를 강제로 중단시키고 계엄과 같은 극단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자본가들도 대부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미·중 대결과 남북한 대치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전쟁의 위험이나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결사적으로 싸우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극한 상황에서 지배계급이 어떤 수단까지 선택할 수 있는지를 윤석열은 우리에게 확실히 상기시켜줬다.
자본주의 체제는 끊임없이 국가 간 대결과 전쟁 및 첨예한 계급투쟁을 낳는다.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고 각종 ‘군 개혁’ 정책을 실행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군대가 무엇보다도 노동자·민중을 겨누는 지배계급의 몽둥이라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61호, 2024년 1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