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설명: 제주 4.3 항쟁 뒤 산간 지방으로 피신한 어린이들(출처: 제주 4.3 평화재단 홈페이지)
제주 4.3항쟁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민중을 억압한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이자, 냉전 시기 독립한 국가들에 친미 정부를 세우려는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비롯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에는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열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한반도에 반공-우익 성향의 친미 정부를 세워 소련 및 공산주의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인들의 열망을 철저히 무시했다. 미군정은 반공주의를 강화하고자 일제에 부역했던 경찰과 관료들을 다시 등용했다. 미군정에 대한 민중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947년 제주에서 ‘3.1절 사건’과 ‘3.10 총파업’이 벌어졌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10만여 명이 참가한 3.1절 대회에서 경찰이 군중에 총을 쏴 6명이 사망했다. 미군정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민중을 대대적으로 검거했다. 이에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민 · 관 총파업이 벌어졌다. 그러나 미군정은 제주도 좌파 세력을 말살하고자 극우파 도지사를 새로 임명하고 육지 경찰을 파견하는 등 극우억압정책을 강화했다. 남한의 단독 선거까지 추진되자 누적된 불만이 제주 4.3 항쟁으로 분출했다. 이후 미국과 이승만 반공-우익 정부는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벌여 당시 제주도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을 학살했다.
당시 미국과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대소 봉쇄전략을 위해 수많은 민중을 희생시켰다. 그리고 현재 미국과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을 위해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제주 4.3항쟁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41호, 2023년 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