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설명: 4월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중견기업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물을 보고 있다.(출처_연합뉴스)
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5년 5월 21일
요새 경제가 매우 어렵다 보니, 정년 연장을 바라는 중장년 취업 노동자가 많고, 취업문이 활짝 열리길 바라는 청년 실업자도 많다. 그렇다면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고 보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정년을 연장하지 말아야 하는가? 반대로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말아야 하는가?
정년 연장이 아닌 퇴직 후 재고용?
만 60세가 넘어도 많은 노동자에게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기에, 그리고 한국은 노인복지가 매우 취약하기에 노동계는 정년 연장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많은 자본가가 정년 연장을 원하지 않는다. 특히 대기업, 공기업의 경우 연공급제(호봉제) 때문에 중장년 노동자의 임금이 높다며 경영진은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기껏해야 1년 촉탁직 등으로 ‘퇴직 후 재고용’하고 싶어 한다. 월급은 반 토막 이하로 후려치면서, 고숙련 노동자를 퇴직 후에도 맘대로 부려먹고 싶은 것이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야 하므로 정년을 연장할 수 없다고 자본가들이나 부자 언론이 말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년연장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임금피크제(임피제)가 그 근거다. 2015년에 노동부는 임피제로 청년 일자리를 13만 개나 만들 수 있다며 20억을 쏟아부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임피제로 4년간 만든 일자리는 최대 8000개뿐이었다. 당시 자본가들은 임피제로 퇴직 앞둔 노동자의 임금을 30~40%나 깎았고, 정부한테 지원금까지 받았지만 청년들을 충분히 채용하진 않았다. ‘이윤극대화’를 신봉하는 자본가들에게 다른 걸 기대할 수 있겠는가?
청년과 장년이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갖는 건 불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해 자본가, 부자 언론, 정부 관료, 보수 정치인들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아니 그런 질문을 꺼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게 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100명이 정년으로 퇴직해도 겨우 8-90명만 신규로 채용하면서 부족한 인원으로 더 빡세게 일하게 만드는 게 자본가 계급의 생리인데, 그들이 정년도 연장하며 청년도 채용하려 하겠는가? 그들은 장년 노동자든 청년 노동자든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은 완전히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왜 청년과 장년이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갖는 게 불가능한가? 왜 장년 노동자에게 ‘퇴직 후 재고용’이 아니라 ‘온전한 정년연장’ 기회를 주는 게 불가능한가? 왜 청년 다섯 중 한 명은 실업자여야 하고, 청년 취업자 10명 중 8-9명은 열악한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는가? 왜 취업노동자는 적은 인력으로 강도 높게 일하며 몸이 망가져야 하며, 왜 실업노동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경제적, 정신적 고통의 바다에서 계속 허우적거려야 하는가? 왜 임금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해 청년과 장년이 함께 편하게 일할 수 없단 말인가?
돈이 없는 건 아니다
저들은 돈이 없다고 한다. 이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2023년 기준으로 국내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2,801조 원이나 된다. 2019년 2041조원에서 5년 만에 760조 원이나 늘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저들에겐 노동자 생존권을 책임질 의지와 능력 모두 없는 것이다. 이 돈은 모두 노동자 피땀을 빼앗아 쌓은 것이므로, 노동자들은 이 돈으로 청년과 장년 노동자 모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저들은 경제를 살리면 일자리는 자동으로 따라온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동안 경제가 어려울 때 인력‧임금‧복지를 가차 없이 줄였다가 경제가 회복돼도 원상회복을 하지 않았던 게 저들인데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윤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를 끝없이 공격하는 저들에겐 기대할 게 하나도 없다. 청년 노동자와 장년 노동자가 단결할 때만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쟁취할 수 있다. 근본적으론 생산의 주인인 모든 노동자가 거대한 투쟁을 통해 경제와 사회의 운전대를 틀어쥘 때만 모든 노동자 권리를 완전히 쟁취할 수 있다.